KIAP | April 18, 2014 | view 2,011
술을 규제할 것인가, 문화를 규제할 것인가 

[출처] 본 기사는 프리미엄조선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

입력 : 2014.03.24 14:57 | 수정 : 2014.03.25 17:29

 

장수마을로 잘 알려진 파키스탄의 훈자마을 주민을 인터뷰한 적이 있다. 훈자는 해발 7000 미터 이상의 고봉 8개가 연꽃 모양으로 마을을 감싸고 있는 카라코람 산맥 속의 오지이다. 외부와 통하는 유일한 통로가 지구상에서 가장 높은 험지를 깎아 만든 카라코람하이웨이(Karakoram highway)뿐이다. 여기서 하이웨이(highway)는 고속도로를 의미하는 게 아니라, 높은 곳에 위치한 길이란 의미이다.


거의 사막화된 카라코람산맥은 건조하기 짝이 없다. 빙하가 녹아 흐르는 우람한 물줄기가 훈자 강을 따라 아래로 흘러가지만, 장구한 세월동안 건조한 산의 협곡이 깎여져 수백 미터 낭떠러지 아래에서 흘러가는 물길을 마을 사람들이 이용할 길이 없다.

황량하기 그지없는 돌투성이 산악지대를 비옥한 세계적인 최장수마을로 만들어 놓은 것은 수 킬로미터에 이르는 바위산을 깎아서 만든 수로였다. 700여년 전 마을 뒤의 울타르 피크(Ultar peak·해발 7388미터)의 빙하수를 마을까지 끌고 오는 대역사(大役事)의 완성했다. 이후 만년설 녹은 물이 온 마을을 굽이굽이 휘돌아 나가면서 돌투성이 산악지대를 기름진 옥토로 바꾸어 놓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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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키스탄 훈자마을 주민들. 장수마을인 이곳 주민들은 장수의 비결이 물에 있다고 생각한다./월간산

빙하가 녹은 물이니 진회색의 혼탁한 물이지만 훈자 사람들은 이 물에 대한 자긍심이 대단하다. 장수마을이 된 가장 큰 원인이 이 물에 있다고 믿고 있다. 길가로 굽이져 흐르는 이 물을 그냥 마시기도 하고 가축과 과수원과 농원에 대기도 한다. 이 물로 인해 인근 마을과는 차원이 다른 삶의 수준을 누리게 되었다.


사실이 이러하니 마을의 장수 노인들과 인터뷰하는 과정에서 훈자 물(hunza water)에 대한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었다. 인터뷰를 하면서 재미있는 사실 하나를 발견하였다. 훈자의 물이 당신의 건강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가라는 질문에 대부분의 노인들이 당황스러워 한다는 점이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이 지역에서훈자 물뽕 술이라는 뜻이다. 이슬람국가인 파키스탄은 음주를 엄격히 금하고 있다. 그러니 술을 물로 칭하는 것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그러  훈자의 물이 당신의 건강에 어떤 영향을 끼쳤느냐는 질문이 매우 당황스러운 질문이었을 것이다.


훈자에서뿐 아니라 많은 문화권에서 물과 술, 차와 술이 혼용되어 사용된다. 또한 대부분의 문화권에서마시다라는 말은술을 마시다를 의미한다. 그래서 마시는 문화(drinking culture)는 음주문화를 말한다. 이는 인류의 삶 속에 술이 얼마나 많이 포함되어 있는지를 짐작케 해주는 증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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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옥토버페스트에서 축제 참가자들이 건배를 하고 있다.

음주문화를 이야기할 때 서구사회는습한 나라(wet countries)’와 건조한 나라(dry countries)’로 구분한다. 습한 나라는 음주에 대해 관용적인 문화를 가진 나라를 말한다. 프랑스, 스페인, 이탈리아, 독일 등이다. 건조한 나라란 음주에 대해 규제를 많이 하는 나라를 말하는데 노르웨이, 스웨덴, 핀란드 등이 그에 해당한다.

습한 나라에서는 주로 술의 사회성을 강조하기 때문에, 크고 작은 행사에서 음식과 함께 술이 권장된다. 알코올소비량이 많을 수밖에 없다. 건조한 나라에서는 술을 절제의 대상으로 보기 때문에 알코올소비량이 적은 반면 개인적 알코올문제가 비교적 많이 나타난다.

음주문화를 기능주의적 문화와 쾌락주의적 문화로 구분하기도 한다. 기능주의는 의식이나 생활 속에서 음주의 사회적 기능을 강조하는 문화로, 주로 와인문화권의 특징이다. 쾌락주의적 문화는 알코올의 효과를 기대하는 나라들로서 남미·남아프리카·남아시아·동구유럽 국가 등이 꼽힌다.


음주문화를 어느 쪽으로 분류하든 알코올이 문제를 일으킨다는 점에서는 별 차이가 없다. 핵심은 술과 사람 어느 쪽에 규제의 초점을 두느냐 하는 것이다. 음주를 문화적 측면으로 이해하면 사람을 변화시키는 방향으로 정책을 수립하려는 경향이 있다. 이를테면건전한 음주문화운동같은 것이 그 예가 된다. 술이 어떤 식으로 관리되던 상관없이 사람들을 변화시켜 음주문제를 예방하자는 운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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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10월 축제가 열린 서울의 한 사립대 캠퍼스 한구석에 쌓인 술병들. 바로 앞쪽 천막 아래에 낮부터 밤까지 술판이 벌어진 장터가 있었다./원선우 기자

그러나 음주문제를 사람이 아니라 술 자체에서 발생하는 문제로 이해한다면 술의 생산과 유통 및 소비를 관리하는데 초점을 두게 된다. 술의 흐름을 명확히 파악하여 음주문제를 예방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드는 전략을 말한다.


두 방법 중 어떤 방법이 음주문제를 예방하는데 더 효과적일까? 콜레라가 유행한다고 가정해보자. 사람들에게 콜레라 예방법을 교육하는 것이 효과적인가, 아니면 콜레라의 전염원을 근본적으로 차단하는 것이 효과적인가. 두 방법 모두 필요하지만 전염원을 차단하는 것이 더욱 효과적인 예방법이다. 알코올의 속성은 교육이나 문화적 운동을 통해 쉽게 변화가 일어나지 않는다는 특징이 있다.


알코올문제에 있어 선택할 수 있는 대안은 그리 많지 않다. 지난 수백 년 동안 서구사회가 노력해온 최선의 대안은 술 자체를 통제하는 방법이었다. 술의 생산과 유통, 소비의 전 과정을 명확하게 통제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추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라는 얘기다.

우리나라의 음주문화를 앞의 두 가지 기준으로 분류해본다면, 습한 문화이면서 쾌락주의와 기능주의적 문화의 특성을 모두 갖추고 있다. 술의 강한 사회적 기능으로 인해 술자리의 참석 여부와 음주선택은 개인적 선택의 영역을 벗어나는 특징을 보여 준다. 그러므로 초기 음주 습관은 개인이 속한 연결망의 타인들에 의해 결정된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그들도 다른 이들의 음주습관을 결정하는 도구가 된다. 스트라우스(Straus)는 이를알코올의 사회적 의존이라고 표현한다. 결국 이렇게 해서 음주문화가 반복·재생산된다.

따라서 알코올의 문제는 개인의 문제라기보다 사회적 문제에 더 가깝다. 음주는 음주자 자신의 건강에 해를 끼치는 한편 가정폭력과 성폭력을 비롯한 각종 폭력과 범죄, 자살, 살인, 사고, 실업, 빈곤 등 다양한 사회문제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음주문화를 가장 빠르게 변화시킬 수 있는 방법이법과 정책이다.


그러나 글로벌 주류기업의 활동으로 인해 이제 어느 한 국가가 스스로 알코올정책을 수립하기가 용이하지 않게 되었다. 알코올관련법을 예민하게 수립하면 당장 외부로부터 불평등 무역이라는 항의와 압력이 들어올 수 있다. 글로벌 단일 국가가 존재하지 않는 한, 지구촌 시민들을 음주의 폐해로부터 보호할 수 있는 시스템 마련이 시급하다. 전 세계 시민의 공조가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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