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AP | April 3, 2014 | view 1,909
"술은 자기 책임 하에 먹으라고? 이런 말부터 하지 말자" 

책임 음주? 술 제조사들의 판촉을 경계하라

수년 전 음주문화를 연구하기 위해 서유럽 국가 몇 곳을 방문한 적이 있다. 그중에서도 우리나라와 음주문화가 가장 비슷한 아일랜드에서는 사회 각층의 사람들뿐 아니라 펍(pub)이나 태번(tavern) 같은 술집을 직접 방문하여 심층 인터뷰를 진행하였다.

아일랜드의 수도 더블린의 태번 한 곳을 방문하였을 때이다. 여느 곳과 다름없이 왁자지껄한 소음과 함께, 이전 우리네 어느 선술집에서 젓가락 두드리며 흥을 돋우던 그런 류의 노래 소리들로 분위기가 한창 고조되고 있었다. 이때 내 눈길을 끄는 광경이 있었다. 허름한 옷차림, 다소 지쳐 보여서 나이가 좀 더 들어 보이는 중년 남자가 아이 둘을 데리고 태번으로 들어오는 게 아닌가?

작은 아이는 우리나라로 치면 이제 막 중학생이나 되었음직한 아직 앳된 모습이었다. 중년 남자는 흑맥주 3컵을 주문하더니 아이들과 함께 태번의 한편에 자리하였다. ‘미성년 자녀에게 술집에서 술을 먹이다니’. 나는 그들의 행동을 면밀히 관찰하기 위해 인터뷰하던 사람과 함께 그들 부자가 있는 곁으로 은근슬쩍 자리를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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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집 등 공공장소에서 흡연을 전면 금지하는 '아일랜드 금연법'이 발효되기 하루 전인 지난 2004328일 수도 더블린의 한 술집. 애연가들이 '마지막 담배'를 즐기고 있다./AP

태번이야 대부분 서거나 앉아서 자유로이 이야기를 나누는 곳이니 자연스럽게 그들 부자의 이야기가 들릴 만한 곳으로 옮겨갈 수 있었다. 왁자한 소음으로 인해 그들 이야기의 세세한 부분까지 듣기는 어려웠으나, 아버지가 자녀들에게 매우 진지하게 주도(酒道)를 교육하는 자리였다.

잘 알려진 바와 같이 아일랜드, 스코틀랜드, 잉글랜드, 네덜란드, 덴마크, 독일 등은 술을 많이 마시는 나라로서 공통점이 있다. 1703년 네덜란드 아른햄에서 성직자 7명이 청구한 식사 한 끼 영수증에 보면 소고기 6.3, 송아지고기 3.6, 닭고기 6마리, 적포도주 20, 백포도주 12병 등이 기록되어 있었다. 당시 네덜란드에서는 맥주가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일반적으로 가장 권장되는 아침식사 메뉴에 들어있었다고 하니 음주 문제가 얼마나 심각하였는지 짐작할 만하다.

아일랜드는 영국의 크롬웰(영국 청교도 혁명을 주도한 정치가)이 아일랜드를 정복할 때 아일랜드인을 게으른 술주정뱅이라고 비아냥거릴 만큼 알코올의 문제가 심각했다. 또 스코틀랜드는 국회의사당의 유리창에 위스키 병 문양이 새겨져 있고, 잉글랜드는 선진국 중 알코올 정책을 수립하기가 가장 어려운 나라 중 한 곳으로 알려져 있다. 이런 나라들은 대부분 다국적 주류(酒類)기업의 본부가 있는 나라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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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의 전통 선술집(Pub)’의 전경. 영국의 펍은 1990년대 7만 곳에 육박했으나 최근 45000곳으로 줄었다./텔레그래프

이 나라들은 대체로 제도적으로는 국가알코올통제정책을 수립하고는 있으나 알코올문제는 여전히 심각한 사회문제로 남아 있다. 이들 국가 주민들의 인터뷰 과정에서 발견한 매우 특이하고 공통적인 특징은 신이 자기네 사람들 모두에게 술을 잘 마실 수 있는 체질을 부여하였다는 기본적인 믿음과 자녀들에게 주도를 교육하는 일이 매우 중요하다는 신념이었다. 위의 아일랜드의 예처럼.

유럽의 많은 나라에서는 미성년자라도 16세 이상이 되면 부모의 동석 하에 와인이나 맥주를 마실 수 있다. 법이란 게 참으로 묘해서 음주가 허용되는 나이보다 몇 살 아래부터 음주를 시작한다는 점이다. 이를 낙수효과(trickle down effect)’라고 한다. 예를 들어 미국처럼 21세에 음주를 허용하면 그보다 몇 살 아래 미성년자들부터 본격적으로 음주를 시작하고, 16세에 허용하면 그보다 좀 더 어린 나이부터 음주를 시작한다는 점이다. 그러니 유럽의 많은 나라에서는 14~5세에 음주를 시작하는 셈이다.

문제는 술을 일찍 접할수록 성인이 된 뒤 음주문제를 많이 일으킨다는 점이다. 웨슬러(Wechsler)와 넬슨(Nelson)의 연구에 따르면, 15세 이전에 술을 마시기 시작한 사람이 21세 이후에 술을 마시기 시작한 사람들보다 21세 이후 성인기 동안 사고나 폭력 등 알코올문제를 일으킬 가능성이 7~12배 더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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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아지오 코리아가 개최한 '조니워커 F-1 파티'.

 음주문화를 논할 때 사회적 수용성이 중요한 포인트이다. 술 취한 상태를 사회가 어느 정도 관용적으로 대하느냐하는 점이다. 주도(酒道)를 강조하는 나라일수록 어린 나이에 술을 접할 가능성이 크고, 한꺼번에 많은 양의 술에 노출될 가능성이 크며, 술 취함에 대해 관대하다. 그러니 그런 나라에서 대형 주류산업들이 발달하기 마련이다.

잉글랜드는 세계 최대의 주류회사인 디아지오를, 네덜란드는 세계 최대의 맥주회사인 하이네켄을, 덴마크는 칼스버그를, 아일랜드는 흑맥주 기네스를, 스코틀랜드는 가장 다양한 위스키회사를, 그리고 독일은 18종이 넘는 유명 브랜드의 맥주를 생산해내는 국가이다. (Fell) 등이 2013년에 발표한 OECD국가 미성년자의 술 취한 경험율을 보면 덴마크 미성년자가 75%, 영국(UK)58%, 독일이 50%, 아일랜드가 48%, 네덜란드가 37%였다. 그리스, 이탈리아, 포르투갈 등 25~28%대를 기록한 나라들과는 매우 대조적인 비율이다.

글로벌 다국적 주류회사의 슬로건은 책임 음주(responsible drinking)’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주류회사들이 음주문화를 미화하면서 주도(酒道)를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주도는 술을 예의 있게 마시는 방법을 말한다. 술에 취해서도 예의를 지키면 된다는 말이다. 그에 더해 책임 음주란 술을 마시고 문제만 일으키지 않으면 무방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알코올의 속성이 어디 그러한가? 태고 이래로 음주를 미화하려는 노력과 음주문제를 예방하려는 시도 사이에 팽팽한 줄다리기가 계속돼왔다. 그러던 것이 19세기 말에 출현한 절제운동에 힘입어 전 세계적인 알코올규제 법안들이 제정되기 시작했다. ‘문화라는 이름으로 우리사회가 음주에 대해 관용적으로 될 때 음주로 인한 사회문제는 더욱 커지게 된다.

주도나 책임 음주를 강조하기 보다는 알코올에 대한 접근성을 낮추려고 노력하는 나라일수록 음주문제의 발생은 낮아진다. 주도를 강조하는 것은 주류회사의 홍보를 대행해주는 결과를 초래한다. 술을 문화의 맥락에서 미화하려는 시도보다는 특별한 관리가 필요한 물질(No Ordinary Commodity)’로 이해하는 것이 사회의 문제를 효율적으로 예방하는 방법이다.


[출처] 본 기사는 프리미엄조선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



 http://premium.chosun.com/site/data/html_dir/2014/03/12/2014031201418.… Click count:539